Recent Posts
Today
Total
Recent Comments
TISTORY 2015 우수블로그
관리 메뉴

Route49

은빛 전설, 실버 애로우 본문

자동차

은빛 전설, 실버 애로우

harovan 2014. 12. 18. 17:54
336x280(권장), 300x250(권장), 250x250, 200x200 크기의 광고 코드만 넣을 수 있습니다.


F1 팬이나 자동차광이 아니더라도 '실버 애로우'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보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영미권에서는 뭔가 빠른것에 플라이어(Flyer), 불렛(Bullet) 같은 단어를 붙여 애칭을 만들곤 하는데 애로우(Arrow) 역시 빠른 녀석에게 붙여지는 단어였습니다.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는 당연히 은빛 화살.. 보통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레이싱카를 부르는 말입니다. 



1950년 F1이 시작되고 나서는 이태리, 영국, 프랑스가 모터스포츠를 지배했지만 F1이 조직되기 이전의 시대는 그야말로 독일의 독무대나 다름 없었습니다. 자동차 레이스에 관심이 지대했던 루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메르세데스 벤츠와 아우토 유니온(아우디)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이 회사들은 히틀러의 기대와 지원에 부응하는 엄청난 괴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F1의 전신이라고 할수 있는 유러피언 챔피언쉽에서 1935년부터 1938년까지 메르세데스-벤츠가 3회, 아우토 유니온이 1회 챔피언에 올랐고 드라이버는 모두 독일인이었습니다. 성적을 찬찬히 뜯어보면 더욱 대단합니다. 1935년부터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8년까지 유러피언 챔피언쉽에는 모두 18번의 챔피언쉽 그랑프리가 있었는데 그중 17번을 독일팀인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토 유니온 우승했습니다. 


1935년 뉘르부르그링에서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의 주요인사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나치 독일의 관중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알파 로메오의 타지오 누볼라리에게 일격을 당한것을 제외하면 그야말로 그랑프리를 독식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실버 애로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널리 알려진 것은 이렇습니다. 1934년 베를린 아부스(AVUS)에서 데뷔한 W25는 연습주행 도중 캬브레터와 연료펌프에 문제가 생기며 레이스에 참가하지 못합니다. 다음 레이스였던 아이펠 렌넨(뉘르부르크링)에 대비해 차를 정비하고 검차를 했는데 이게 왠걸.. 당시 무게규정이었던 750 kg을 살짝 넘긴 751 kg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이에 당시 메르세데스-벤츠 레이싱팀의 보스였던 알프레드 누바우어와 드라이버 만프레드 폰 브라우히치는 W25의 하얀 페인트를 벗겨내어 750 kg 규정에 부합되는 차를 만들었고 브라우히치는 아이펠 렌넨(뉘르부르크링) 레이스에서 우승합니다. 하얀색 페인트를 벗겨내자 경량화를 위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던 바디워크가 드러났고 이후 W25의 페인트 칠하지 않은 차를 두고 실버 애로우라고 불렀다는것 입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꽤나 드라마틱 하지 않나요? 레이스 드라이버였던 누바우어는 자신이 소질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니저의 길로 들어선 합리적인 사람이며 모터스포츠에 깃발신호와 보드사인을 처음 도입한 머리 좋은 사람이니 실버 애로우의 탄생신화(?)는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누바우어가 1958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주장한 실버 애로우의 탄생과정에는 헛점이 많습니다. 사실 곰곰히 뜯어보면 말도 안되는 뻥이라고 말할수도 있을 정도입니다.



첫째, 등장시기부터가 오류입니다. 1932년 만프레드 폰 브라우히치는 아부스에서 스트림라인 SSKL로 우승을 하는데 당시 라디오 해설자는 SSKL을 실버 애로우라고 부른 기록이 있습니다. 누바우어가 주장하는 1934년보다 2년 빠른 일이지요.


또한 누바우어는 750 kg 규정에 맞추기 위해 페인트를 벗겨냈다고 주장했지만 1934년 아이펠렌넨 레이스는 AIACR(FIA의 전신)의 포뮬러 리브레 레이스였습니다. 포뮬러 리브레는 안전에 관련한 규정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무제한의 카테고리로 750 kg 맞출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바우어 자서전 출간 이전에 이것에 대해 언급된 기사나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W25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없습니다. 하얀 W25의 사진이 돌기는 했지만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실버 애로우의 탄생과정에는 오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누바우어를 비롯해 브라우히치, 헤르만 랑은 끝까지 페인트 벗겨내기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당시(1934년) 메르세데스의 미캐닉이었던 오이겐 라이힐이 "하얀색으로 칠해진 차는 없었고 페인트를 벗겨낸 적도 없다" 증언이 밝혀지며 실버 애로우에는 흠집이 났습니다. 



1904년 차의 페인트를 벗겨낸 케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누바우어가 13살때 일로 이것과 헷갈렸다 말하기도 힘듭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당시는 기계공학의 전성기였고 자동차 공학은 항공 공학과 일맥상통했습니다. 당시 대형 비행기들은 무게를 줄이고자 페인트를 칠하지 않은 경우가 있었는데 실버 애로우 역시 거기서 영감을 받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실 실버 애로우의 탄생이야 어찌되었건 실버 애로우는 독일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아이콘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는 여전히 실버를 메인 컬러로 사용하고 있으며 포르쉐 역시 그룹 6(프로토타입 레이싱)에서 실버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우디는 르망 LMP-1에 실버를 선택해 지금껏 이어오고 있기도 합니다.



실버 애로우는 독일에 국한되지도 않았습니다. 1989년 르망24에서 1-2위에 오른 자우버의 그 유명한 C9은 메르세데스 엔진을 심장으로 삼고 스위스산 실버 애로우가 되었습니다. 또한 F1의 맥라렌 역시 2006년부터 크롬 컬러를 도입하며 메르세데스 엔진을 가진 영국산 실버 애로우가 되기도 했습니다. 



2010년 메르세데스가 브론GP를 인수하며 F1으로 다시 들어오며 원조 실버 애로우의 복귀가 이루어졌습니다. 2014년에는 막강한 V6 터보 엔진을 바탕으로 19개의 F1 그랑프리 중 16번 우승하고 18번이나 폴포지션을 기록하며 드라이버/컨스트럭터 챔피언에 올라 실버 애로우의 부활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독일 회사인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르쉐가 모두 실버 애로우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만 유독 BMW 만큼은 실버 애로우와 연관이 없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는 오랜 경쟁관계이고 페르디난드 포르쉐와는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이유 때문 일까요? BMW는 하얀색만 고집합니다. DTM은 물론 자우버를 잠시 인수해 F1에 참가했던 2006-2009 F1 시즌에는 화이트를 메인 컬러로 사용했습니다. 



실버 애로우는 탄생과정이 석연치 않기는 하지만 그 실력만큼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입니다. 독일차는 세계 어디를 가나 인정 받곤 하는데 그 근간에는 바로 실버 애로우 같은 유산이 있지 않을까요? 수십년간 지켜온 전통과 빼어난 실력 실버 애로우야 말로 독일 자동차 산업이 왜 강력한가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