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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챔피언의 죽음 본문

F1

F1 챔피언의 죽음

harovan 2014. 9. 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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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잭 브라밤 경이 호주 골드 코스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접하고 F1 챔피언들의 죽음에 대해 포스팅을 해보고자 했는데 이제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네이버에서 티스토리로 옮기는 과정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바쁜 일들이 많았네요. 이번 포스팅은 이미 사망한 챔피언에 대한 내용만 다루었습니다. 



쥬세페 파리나(Giuseppe Farina)

1950 챔피언 : 알파 로메오

1906. 10. 30 - 1966. 6. 30(59)

 

현역시절 과감함을 넘어 무모한 드라이빙 스타일로 유명했던 쥬세페 파리나는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랭스에서 열린 1966년 프랑스 그랑프리를 보러 가는 길에 에규베르에서 타고 가던 로터스 코티나가 미끄러지며 전신주를 들이받아 사망했습니다.

 

후안 마누엘 판지오(Juan Manuel Fangio)

1951, 1954, 1955, 1956, 1957 챔피언 : 1951(마세라티), 1954(마세라티, 메르세데스), 1955(메르세데스), 1956(페라리), 1957(마세라티)

1911. 6. 24 - 1995. 7. 17(84)

 

스피드와 레이스 운영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판지오는 드라이버로서는 천수를 느린 84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초창기 챔피언들이 대부분 사고로 목숨을 잃은것과 달리 판지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병원에서 페렴으로 사망했고 고향에 묻혔습니다.

 

알베르토 아스카리(Alberto Ascari)

1952, 1953 챔피언 : 페라리

1918. 7. 13 - 1955. 5. 26(36)

 

친구인 유지니오 카스텔로티의 '페라리 750 몬자' 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잠시 탔다가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스카리는 레이스에 나설때 푸른 셔츠를 입고 푸른 헬멧을 쓰는 징크스가 있었는데 사고 당시에는 아스카리는 푸른색을 입지 않고 있었습니다. 사고장소는 원래 고속코너 였지만 아스카리의 사고 이후 시케인으로 바뀌었고 아스카리의 이름을 따서 '바리안테 아스카리'로 불리게 됩니다. 

 

마이크 호손(Mike Hawthorn)

1958 챔피언 : 페라리

1929. 4. 10 - 1959. 1. 22(29)

 

팀메이트이자 친구였던 루이지 무소가 1958년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사고 목숨을 잃자 호손은 챔피언이 확정 되자마자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고속도 A3에서 친구이자 F1 오너였던 롭 워커의 메르세데스 걸윙을 추월하다가 차량의 후면이 도로상의 아일랜드와 충돌해 컨트롤을 잃어 마주오던 트럭과 스치고 가로수와 충돌하며 심각한 머리부상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잭 브라밤(Jack Brabham)

1959, 1960, 1966 챔피언 : 1959-1960(쿠퍼), 1966(브라밤)

1926. 4. 2 - 2014. 5. 19(88)

 

은퇴 이후 자식들은 모터스포츠를 시키지 않겠다는 바램을 지녔던 브라밤 여사의 압력으로 시골 농장으로 강제 이주 당하고 팀까지 매각한 잭 브라밤은 브라밤 여사의 바램대로 살지는 않았습니다여전히 호주와 영국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했고 아들 셋은 모조리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고 손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돌아가시기 전까지 모터스포츠 관련 활동을 이어가다가 골드 코스트 자택에서 부인과 아침식사를 하던 도중에 돌아가셨습니다.

 

필 힐(Phil Hill)

1961 챔피언 : 페라리

1927. 4. 20 - 2008. 8. 28(81)

 

필 힐은 1966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이후 클래식카 복원사업에 뛰어들며 사업가로 활약합니다. TV 코멘테이터나 잡지에 글을 기고하는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8년 몬터레이에서 열린 클래식카 레이스에 다녀온 이후 파킨슨씨병 합병증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레이엄 힐(Graham Hill)

1962, 1968 챔피언 : 1962(BRM), 1968(로터스)

1929. 2. 15 - 1975. 11. 29(46)

 

전세계 유일의 모터스포츠 트리플 크라운(F1 챔피언르망24 우승인디애나폴리스 우승)인 그레이엄 힐은 프랑스 폴 리카르에서 테스팅을 마치고 경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다 추락해서 사망했습니다.

 

힐이 타고 오던 파이퍼는 짙은 안개가 끼어있던 야간에 엘스트리 에어필드에 착륙을 시도했지만 인근의 아클리 골프장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이 사고로 그레이엄 힐은 물론 팀 매니저였던 레이 브림블을 포함한 5명의 팀인원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데니 흄(Denny Hulme)

1967 챔피언 : 브라밤

1936. 6. 18 - 1992. 10. 4(56)

 

많은 F1 챔피언들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데니 흄처럼 극적으로 세상을 떠난 분도 없을것 같습니다. 1992년 호주 모터스포츠의 성지 바터스트에서 열린 바터스트 1000 BMW M3를 가지고 출전한 흄은 라디오 교신을 통해 시야가 흐려진다고 리포트를 했습니다.

 

당시에는 비가 적지 않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팀에서는 비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원인은 충격적이기도 심장마비였습니다. 정신을 잃은 흄은 고속주로인 콘로드 스트레이트에서 안전 레일과 콘크리트 벽에 잇따라 충돌 했습니다.

 

흄은 트랙 마샬에게 바로 구조되어 가까운 바터스트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다시 눈을 뜨지 못하고 맙니다.

 

요헨 린트(Jochen Rindt)

1970 챔피언 : 로터스

1942. 4. 18 - 1970. 9. 5(28)

 

야생마 요헨 린트는 가장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챔피언이며 세상을 떠난 후에 챔피언에 오른 유일한 레이스 드라이버입니다. 린트는 1970년 이태리 그랑프리 퀄리파잉에서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린트의 뒤를 따르던 데니 흄에 따르면 파라볼리카로 들어서던 린트의 로터스는 '브레이킹에 들어가는 순간 위빙이 있었고 갑자기 왼쪽으로 뒤틀리더니 배리어와 충돌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린트의 로터스 72는 브레이크 샤프트 문제로 차가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지만 결정적인 사인은 크래쉬 배리어의 상태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임스 헌트(James Hunt)

 

1976 챔피언 : 맥라렌

1947. 8. 29 - 1993. 6. 15(45)

 

영화 '러쉬'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제임스 헌트는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1979년 맥라렌이 좋은 차를 만들어주지 못하자 시즌 중 갑자기 은퇴를 선언해 버리고 F1에서 나온 헌트는 BBC F1 중계에 참여하게 됩니다.

 

자유분방한 성격과 특유의 언변으로 1993년 죽기 전까지 F1 중계를 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지만 F1 복귀를 타진하기도 했습니다. 헌트는 연인이었던 헬렌 다이슨에게 청혼을 한 몇시간 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일톤 세나(Ayrton Senna)

 

1988, 1990, 1991 챔피언 : 맥라렌

1960. 3. 21 - 1994. 5. 1(34)

 

F1에서 가장 유명한 죽음을 꼽으라면 아마 아일톤 세나의 죽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대 최고의 드라이버였고 F1 드라이버가 트랙 위에서 맞이한 마지막 사망사고라는 의미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의 팬은 '아일톤 세나' 그 자체를 잃었기 때문에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사고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994년 산 마리노 그랑프리에서 폴포지션에서 출발한 세나는 당시 신예였던 미하엘 슈마허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됩니다. 7.. 고속코너인 탐부렐로를 307 kph의 속도로 진입하던 세나의 윌리암스는 이해할수 없는 궤적을 그리며 트랙을 이탈하며 콘크리트 벽을 들이 받습니다.

 

충격 직후 세나는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결국 몇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사망하고 맙니다. 세나의 사망사고의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이미 금요일 연습주행에서 롤랜드 라첸베르거의 사망사고가 있었고 루벤스 바리켈로 역시 목숨을 위협받았지만 그랑프리가 그대로 강행되었고 세나가 죽자 비난의 화살은 FIA에게도 날아들었습니다.

 

이태리 검찰은 세나의 사망사고 조사에 착수해 세나의 스티어링 컬럼 용접에 문제가 있었고 이게 사망사고의 발단이었다고 발표합니다. 이에 이태리 검찰은 윌리암스의 오너 프랭크 윌리암스는 물론 패트릭 헤드와 아드리안 뉴이 등을 과실치사로 기소했습니다.

 

법정공방은 10년이나 이어졌지만 이태리 법원은 세나가 스티어링 칼럼에 의한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검찰이 기소한 윌리암스-헤드-뉴이 등의 혐의는 인정하지 않으며 사건은 종결되고 맙니다.

 

세나의 죽음 이후 FIA는 안전에 관련된 문제에는 극도로 민감해 졌습니다. HANS가 도입되었고 크래쉬 테스트는 점점 강화되고 있으며 많은 드라이버의 목숨을 앗아간 코너의 콘크리트벽은 사라졌습니다.

 

아일톤 세나가 어이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세나 이후 트랙에서 목숨을 잃은 F1 드라이버는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 자료를 정리하면서 새삼 느껴지는게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떠나보낸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고 F1 블로거로서는 달리는데 미쳐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옅보는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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