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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롤 헤드 '스피드에 미친 사람들' -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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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롤 헤드 '스피드에 미친 사람들' - 1

harovan 2016. 8. 1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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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블로그를 시작하고 네이버에서 파워 블로그 완장까지 달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책을 써볼까?' 물론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고 출판이 수월하다는 전자책이라고 해도 '책'을 만든다는 것은 역시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를 하면서 정확성을 위해 이런저런 자료조사를 하면서 나름의 자료를 축적하기 시작했고 '책이 안되면 블로그에라도 연재를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목은 '페트롤 헤드'로 지었습니다. Petrol Head.. '머리에 기름이 찬 사람'이란 뜻으로 과거에는 모터스포츠에 종사하거나 자동차를 광적으로 좋아하던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페트롤 헤드에서는 자동차라는 기계를 운송수단을 넘어 최고의 스피드를 겨루는 포뮬러 1이라는 스포츠로 만들고 발전시킨 사람과 역사를 다루어 볼까 합니다. 제 지식도 부족하고 아직 확인해야 하는 정보도 산더미인지라 자주 포스팅 하지는 못합니다. 많아야 한달 한두번? 초반에는 조금 더 자주 올릴 수는 있지만 통상적인 뉴스 포스팅에 비하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Chapter 1 여명


우리나라에서는 F1 레이스카를 두고 '머신'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영어로는 여전히 'Car'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의 F1은 로드카와는 전혀 별개의 기계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F1은 자동차에서 시작되었고 우리가 아는 자동차라는 것은 19세기에 등장했습니다.



최초의 자동차는 1885년 칼 벤츠(Karl Benz)의 '벤츠 파텐트 모터바겐'으로 알려진게 일반적 입니다. 최초의 자동차를 두고 여기저기서 '사실은 내가 최초'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건 칼 벤츠의 2행정 사이클의 3륜차 인것은 확실합니다. 자동차에 관해서 최초를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기는 합니다. 최초로 작동가능한 내연기관은 1860년에 선을 보였고 1826년에는 증기버스가 영국 런던에서 운행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칼 벤츠보다 이르게 프랑스, 이태리, 오스트리아에서 각각 내연기과 차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이들을 최초로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9세기 당시에는 자동차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오늘날 메르세데스-벤츠의 뿌리가 된 벤츠의 공방과 고틀립 다임러와 빌헬름 마이바흐가 세운 다임러는 물론 르노, 푸조, 파나르(현재 르노 트럭) 같은 회사들이 생겨났습니다. 일부는 독자생존을 했고 일부는 합병을 통해 살아남아 지금까지 역사를 잇고 있습니다.



자.. 자동차 회사들이 생겨났으니 이들이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판매를 해야겠지요? 당시에는 마차를 대신하는 대용품이기는 했지만 허약한 엔진과 엄청난 비효율로 인해 부자들의 장난감으로 취급 받기도 했습니다.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팔이 빠지도록 크랭크 핸들을 돌려야 했고 조종은 흔히 말하는 핸들(스티어링 휠)이 아닌 막대기 형태의 틸러 스티어링이었습니다. 마차의 시대를 벗어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자동차들은 여전히 마차의 형태를 유지했습니다. 또한 고장 없이 20-30km를 달리기도 힘든 상품성 때문에 조금 멀리라도 가려면 라이딩 매카닉을 태워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894년 프랑스의 일간지 쁘티 주르날(Le Petit Journal)의 편집장이자 사이클, 마라톤 등의 이벤트를 주최했던 피에르 지파르(Pierre Giffard)가 자동차로 파리에서 루앙까지 달리는 자동차 레이스를 제안합니다. 이른바 '파리-루앙 트라이얼'로 알려진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로 정식 명칭은 'Concours du 'Petit Journal' Les Voitures sans Chevaux' 입니다. 해석하자면 '쁘티저널배 말 없이 달리기 대회' 정도가 되겠습니다.


파리-루앙 사이의 126km를 달리는 레이스로 관심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총상금 10,000 프랑에 1등 상금은 5,000 프랑으로 위험하지 않고 다루기 쉬워야 하며 비싸지 않아야 한다는게 레이스의 조건이었습니다. 아.. 가장 중요한 규정은 8시간 3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총 102대가 참가를 했고 그중 17대가 완주를 했습니다. 1등으로 레이스를 마친것은 드 디옹(De Dion)으로 기록은 5시간 40분 이었습니다. 그런데 드 디옹은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가 아니라 증기기관으로 만들어진 차로 트레일러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석탄을 급탄하는 화부가 동승했습니다.



주최측은 드 디옹이 내연기관이 아닌 증기기관을 사용한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화부를 문제삼아 드 디옹의 1위 자리를 박탈하고 푸조와 파나르에게 공동 1등을 수여하고 드 디옹에게는 2위를 주게 됩니다. 지금 같아서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이 증기기관에게 진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 말 없는 마차들의 미숙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파리-루앙 트라이얼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선 최초의 자동차 레이스가 치뤄진 이후 모터스포츠는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둘째로는 파리-루앙 트라이얼 이후 자동차가 기술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프랑스가 모터스포츠의 중심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자동차 레이스는 주로 전용서킷을 달리는 트랙 모터스포츠와 달리 랠리의 형태였습니다. A에서 B 지점까지 누가 빨리 가는가를 겨루는 방식이었습니다. 1894년 첫 레이스가 열린 이후 파리는 자동차 레이스의 중심이 되어 파리-암스테르담, 파리-베를린, 파리-비엔나 같은 레이스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레이스가 치뤄질수록 인기를 거듭하게 되었고 레이스카들의 발전은 눈이 부쉈습니다.



1903년 이제는 대회 규모도 거대해져서 270대의 레이스카가 출전하는 파리-마드리드 레이스가 열립니다. 파리-루앙 트라리얼의 평균속도가 20km/h가 되지 않았었지만 10년도 안되어 160km/h 이상을 달리는 차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예상관객은 무려 200만명이었습니다. 르노의 창업자 르노 형제 중 한명인 마르셀 르노를 포함한 2명의 드라이버, 1명의 라이딩 매카닉, 5명의 관중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당하는 사고가 생기자 프랑스 의회는 레이스를 보르도에서 중단시키고 스페인 국경으로 차를 옮겨 레이스를 계속할 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가 이를 거부하며 레이스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쯤되니 자동차 레이스를 곱지 않게 보는 여론이 형성되고 모터스포츠는 좋게 말해 괴짜, 나쁘게 말하면 환장한 놈들이 하는 목숨을 건 취미활동쯤으로 보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도 그럴게 당시 레이스는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열리는 방식이었고 레이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유럽 각국들은 로드 레이스를 금지시켜 버리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은 역시 전용서킷 이었습니다. 1907년 영국의 사업가 휴 로크 킹(Hugh Locke King)은 서리에 브룩랜즈(Brooklands)에 영국 최초의 비행장을 겸한 세계 최초의 레이스 전용서킷을 만듭니다. 브룩랜즈 서킷은 1909년 건설된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모터스피드웨이의 영감을 주기도 한 전세계 모터스포츠의 주춧돌이 된 역사적인 기념비 입니다. 이후 유럽 곳곳에 전용서킷이 건설되었고 1923년에는 공공도로를 합법적으로 막아놓고 달리는 르망 24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서킷과 스트리트 레이스라는 무대는 마련되었고 1차 세계대전 전후로 유럽의 공업이 크게 발전하며 자동차의 기계적인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무대와 배우는 갖추어진 셈.. 때문에 모터스포츠는 제대로된 형식을 보이기 시작했고 점점 스포츠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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